인조와 청나라의 뜻이 서로 정확히 맞아떨어졌던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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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 18:07
상이 칙서 앞으로 나아가, 한 번 절하고 세 번 머리를 조아리는[一拜三叩頭] 예를 행하고 이어 칙서를 받았는데, 그 칙서에 이르기를,
"황제는 조선 국왕(朝鮮國王) 이휘(李諱)에게 칙유(勅諭)하노라.
(생략)
하였고, 다음으로 섭정왕(도르곤)의 서신을 열어보니, 그 글에 이르기를,
"황숙부(皇叔父)인 섭정왕은 조선 국왕에게 글로써 위문합니다. 갑자기 세자의 부음을 듣고 깊이 놀라고 애도하였습니다. 세자는 은혜롭고 온화하고 돈후하고 정성스러워 문채가 금옥(金玉) 같았으므로, 국왕을 도와 덕화를 펴서 우리 왕실의 훌륭한 제후가 되기를 방금 기약했는데, 어쩌면 그리도 하늘이 착한 사람을 보우하지 않고 갑자기 중도에서 꺾어버린단 말입니까. 국왕 부자(父子)의 지극한 정리를 생각하면 어찌 그 슬픔을 잊을 수 있겠습니까마는, 국왕께서는 높은 연세에 질병까지 있는 터라, 지나치게 슬퍼하시는 것이 더욱 심신을 상하기 쉬우니, 의당 음식 거처를 때에 맞게 하고 의약(醫藥)으로 몸을 보호하며 힘써 너그러이 풀어버릴 것을 생각하여 영원한 복을 받으셔야 합니다."
(생략)
하여 정명수가 좌우 신하들을 물리치기를 청하므로, 상이 시신(侍臣)들을 합외(閤外)168) 에 나가 있도록 하니, 환관 두 사람만 남아서 상을 모시었다. 이때 사관(史官)이 합외에서 바라보니, 통역관이 상과 칙사 사이를 세 차례 왕복하였다. 한참 뒤에 상이 시신들을 들어오라고 명하였고, 칙사는 밖으로 나갔다. 상이 명하여 도승지 김광욱(金光煜)을 앞으로 가까이 나아오게 하고 이르기를,
"칙사가 섭정왕의 뜻으로 전언(傳言)하기를 ‘동방의 인심이 좋지 않은데, 이런 때에 만일 어린 원손을 후사로 삼는다면 인심이 위의(危疑)하여 불안할 듯합니다.’ 하기에 내가 사실대로 고하였더니, 네 사신들이 다 기뻐하여 말하기를 ‘국왕에게 이미 정해진 계책이 있으니 동방의 행복입니다.’고 했다."
하였다.
<인조 23년 6월 4일>
정확히 표현하면 당시 청의 실권자였던 섭정왕 도르곤과 인조의 뜻이 맞아떨어진 순간.
도르곤이 소현세자를 조선으로 영구 귀국 시켜주었는데, 귀국한 소현세자가 얼마후 급사하자 도르곤이 사신과 정명수를 보내서 위로의 뜻을 표함.
저렇게 위로의 뜻과 슬퍼하느라 몸 상할까 걱정 된다 위로해줘서 고맙다 이런 의례적인 말들 서로 주고받고 하다가 청나라 사신과 정명수가 조선 신하들 모두 나가게 해달라해서 내관 두 사람만 인조 곁에 남고 조선 신하들은 다 편젼 문 밖으로 나가고, 사관도 거기 동석 못 하고 문 밖에서 바라보기만 함.
그리고 인조와 청나라 사신은 본격적인 대화를 나눔.
도르곤
지금 정세가 혼란스러운데 여기서 조선 왕위를 어린 원손이 물려받고 조선이 혼란스러워지면 여러모로 골치 아프지 않겠음? 어린 원손 말고 우리와 면식이 있는 봉림대군 어떰?
인조
내가 생각해온 바가 님 뜻과 같음ㅎㅎㅎ
도르곤
굿굿굿 ㅎㅎㅎ
사실 도르곤이 소현세자 청나라에 데리고 있을 때도 은근히 공을 (?) 들이기도 했음.
소현세자 잘 대해준 편이기도 하고 산해관 전투에서 이자성하고 싸울 때도 소현세자를 불렀는데, 소현세자가 와서 자리에 앉기도 전에 도르곤이 말에 올라타며 세자는 전쟁터로 따라오라고 명하며 소현세자와 조선 관리들을 전쟁터에 데리고 감.
그리고 소현세자와 호종했던 조선 관리들은 이 전투에서 팔기군이 30분 만에 이자성의 6만~20만 병사들을 녹여버리는 장면을 봄 (궁시공격 2~3회로 기선 제압한 뒤에 기병 돌격해서 녹여버리기)
도르곤
세자야. 청나라 힘 잘 봤지? 조선에 귀국해서 왕이 되어도 대청에 개길 생각 따위는 하지를 말라고.
대략 이런 퍼포먼스 였던거 같은데, 이렇게 나름 공을 들인 소현세자가 돌려보내자마자 죽어버리니 도르곤 입장에서는 "아 기껏 공 들여놨더니 귀찮게하네 ㅅㅂ" 뭐 이런 생각 아니었나 싶음.
그래서 저렇게 사신 보내서 인조의 의향을 떠봤는데 인조가 생각하고 있던 것과 도르곤의 의향이 서로 딱 맞아떨어진 순간.
봉림 대군(鳳林大君)이 상소하기를,
"삼가 생각하건대, 신은 어리석고 불초하여 뭐 하나 쳐줄 만한 것도 없는 위인이 집에 있으면서 봉록만 먹는지라, 항상 그 과실이 위로 성명(聖明)의 걱정을 끼치게 될까 두려워했습니다. 그런데 꿈속에서도 생각하지 않게 천만 뜻밖으로 갑자기 신을 세자의 자리에 올리시는 전교를 내리시니, 신은 가슴을 치도록 망극하여 몸둘 곳이 없어서 밤낮을 쉬지 않고 놀라 부르짖어 울다가, 이렇게 궁박한 정황을 하소연할 곳이 없었으므로, 부득이 만 번 죽음을 무릅쓰고 번거롭게 말씀을 드립니다.
삼가 생각건대, 선 세자가 (소현세자) 오랫동안 동궁에 있다가 이제 막 서거하였고, 원손의 칭호는 온 나라 사람이 우러러 아는 바입니다.
(중략)
하니, 상이 답하기를,
"상소를 살펴보고 너의 간절한 마음을 잘 알았다. 너는 총명하고 효성스럽고 우애 있으며 국량이 좁은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특별히 ‘맏형이 죽으면 그 다음 아우가 계통을 잇는다.[兄亡弟及]’는 예를 썼으니, 너는 사양하지 말고 더욱 효제(孝悌)의 도리를 닦아 형의 자식을 마치 너의 자식처럼 보살피거라."
하였다.
<인조 23년 6월 4일>
그리고 이때 봉림대군은 자신의 세자 책봉을 거둬달라고 하고 있었음.
그리고 인조는 이런 봉림대군에게 소현세자와 강빈의 자식들을 너의 자식처럼 보살피라고 말함.
하지만 그 뒤의 일은 대부분 다 아는대로 강빈을 억지스러운 방법으로 죽이고 얼마 뒤에 소현세자와 강빈의 아들이자 자신의 손자가 되는 아이들도 다 귀양 보냄.
그리고 인조는 원손 (훗날의 현종) 을 세손으로 봉하는 등 모든 승계 작업을 나름대로 다 마치고나서 3달도 안 되어서 죽음.
1. 원래는 처음 말 그대로 소현의 아이들도 잘 보살피라는 뜻이었다가 이런 짐은 자기가 더 처리하고 가야 된다는 생각에 저렇게 했던건지.
2. 니가 왕이 되면 조카들을 니 자식처럼 보살펴줘야 한다. 조카들이 그때까지 남아있다면 말이지만ㅎㅎㅎ
봉림대군에게 저 말을 했을 때 무슨 뜻이었을지는 알 수 없지만, 저렇게 승계 작업 다 마치고 죽은거 보면 아마 전자 쪽이 아니었을까 싶긴 함.
물론 저 강빈 제거 과정에서 무리수를 많이 둬서 효종 정통성 문제가 생기긴 했지만, 광해군 정신병자 만들어놓고 마지막 유언도 양심 터진 병신 이었던 선조의 승계에 비하면 선녀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