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 알려지거나 오해받는 역사 상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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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18 12:40
1. 문화대혁명 관련
문화대혁명은 중국 역사상 최대 반달리즘으로 ‘중국에서 모든 영역을 후퇴시켰다’고 평가 받기 때문에
간혹 관련 영역과 거리가 먼 것도 문화대혁명으로 ‘소실’되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본질적으로 문화대혁명은 이전의 봉건적 문화를 극단적으로 파괴하려는 운동이기 때문에
중국 현대 기록 등을 모조리 파괴하지는 않았다.
그렇기에 현대사 기록은 멀쩡이 있는 경우가 많은 것.
봉건적 작태나 정파 싸움과 거리가 있는 분야는 밈으로 쓰이듯이 모든 것이 파괴되지 않았다.
밈적 용례로 문화대혁명을 쓸 수 있으나, 온갖 분야에 갖다 붙이기에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는 것.
※ 이와 관련된 오해로서 간자체도 문화대혁명의 산물이라 알고 있는 경우가 있는데,
간자체는 그냥 한자가 너무 어려워 문맹률을 낮추기 어렵기 때문에 한자를 간소화하기 위한 운동에 불과하다.
한자의 간략화 시도는 한국과 일본에서도 있었다. 간화를 먼저 시작한 것은 대만이었다.
2. 천안문 6.4 항쟁=자유민주주의 운동?
천안문 6.4 항쟁은 한국의 민주화운동과 같이 자유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운동이라 오해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회주의 체제 내에서의 민주적 개혁’을 추구한 운동에 가깝다.
굳이 따지면 당시 시위대가 원하던 사회상은 제1세계 민주주의보다, 유럽의 사회민주주의 국가의 사회상과 더 가까웠던 것
3. 고구려의 국호
고구려의 국호는 동명성왕 때부터 ‘고구려’였으며, 장수왕대 이후 ‘고려’로 개칭된 것으로 본다.
왕건의 고려는 이를 계승한 것.
간혹 ‘옛날의 고려다’해서 ‘고구려’라고 알고 있는 경우도 있는데, 옛날의 고려는 '구고려(句高麗)’라 했다.
4. Korea 음모론
일제강점기, 한국의 영문을 의도적으로 K로 배치해 J보다 뒤쳐지게 했다는 것은 유명한 "잘못된" 상식이다.
당시 한반도를 일컫는 대표적인 지명은 Korea와 Chosun이었다. 일본식으로 읽어도 'Choseon'으로 C로 시작한다.
5. 기미년 3월 1일 정오?
기미독립선언문은 "삼일절 노래" 가사와 달리 정오가 아니라 오후 3~4시에 발표되었다.
6. 김정호 옥사설
대동여지도를 만든 김정호는 옥사하지 않았다.
추가적인 지도 제작을 하다 병환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며, 대동여지도는 불타지 않았다.
해당 이야기는 일제시대 교과서 등에 추가된 가공의 프로파간다다.
7. 당파로 골병드는 조선?
조선 후기 당쟁으로 사망한 사람은 50년간 79명으로 타국의 정변에 비해 안정적인 상태에서 정권 교체가 활발히 일어났다.
조선시대 당파 싸움이 나라를 좀먹었다는 주장은 식민사관의 대표적인 영향. 부정적인 영향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었으나,
그 정도가 과장되어 알려졌다.
8. 오히려 평균 이상인 나폴레옹
나폴레옹 키는 167이고 당대 평균 키에 비해 오히려 큰 편이었다. (당시 남성 평균키 164cm)
9. 출처를 알 수 없는 명언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는 말을 최초로 한 사람은 불분명 하다.
신채호, 처칠설 등이 있지만 공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문건이나 기록은 없다.
다만, 박은식의 ‘한국통사’에 따르면 비슷하게 해석될 수 있는 문구는 존재하지만 완전히 일치하지 않는다.
10. 아버지보다 유명한 아들
최영 장군의 ‘황금 보기를 돌 같이 하라’는 본인의 격언이 아니라 최영 장군 아버지의 격언이다.
최영장군이 유명하다보니 와전된 것.